카피 잘쓰는 이야기_ 24. 적의 입으로 나를 이야기하게 하라!
카피라이터로 밥벌이하고 싶은 분들을 위한 카피 책 리뷰 시간입니다. 카피책 24번째 시간. 라이벌 사용법. 적의 입으로
나를 이야기하십시오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저자는 길을 걷다 휴대전화 가게가 보이면 속도를 조금 늦춘답니다. 문밖에 걸린 울긋불긋한 카피를 눈여겨봅니다. 사실 모든 휴대전화 가게가 같은 얘기를 합니다. 우리 대리점이 가장 쌉니다. 딴 데 가면 이 가격에 죽어도 못 삽니다. 그런데 같은 얘기를 다 다르게 합니다. 그것을 비교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네요.
우리 동네 휴대전화 가게는 이런 배너를 문 앞에 걸어놓았습니다.
Copy> 무서워서 밤에 잠도 못 자요. 타 매장에서 절 죽이려 합니다. 싸도 너무 싸게 판다고요.
재미있습니다. 웃음이 나옵니다. 과연 얼마나 싸게 파는지 문 열고 들어가 확인해 보고 싶어집니다. 이 가게 사장은 카피라이터 출신이 틀림없습니다. 성질 더러운 팀장 만나 사표 던지고 나와 가게 차린 게 분명합니다. 이 카피의 힘은 경쟁자를
끌어들였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 이야기를 하는가 아니라, 경쟁자가 생각하는 나를 경쟁자 목소리로 이야기함으로써 내 이야기에 객관과 신뢰를 더 했다는 점입니다. 프로 솜씨입니다.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은 피곤합니다. 자신이 맡은 제품만 아니라 라이벌 제품에도 늘 안테나를 세우고 살아야 합니다. 내가 하이트 광고를 한다면 시선 절반은 늘 카스를 항해야 합니다. 카스 광고는 어느 대행사 몇층 어느 팀이 하는지, 카피라이터는 누구인지, 지금 어떤 캠페인을 하고 있는지, 다음 캠페인은 어떻게 갈 것 같은지, 매장에서 하이트와 카스 중 어떤 게 더 잘 보이게 진열되어 있는지, 술집에서 카스 마시는 사람들 인상착의는 어떠한지. 꿈속에서도 경쟁자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아야 하는 게 카피라이터입니다. 왜냐고요? 경쟁제품을 넘어뜨려야 우리 제품 설 자리가 생기니까요. 적의 빈틈을 물고 늘어져야 내가 살 수 있으니까요. 조금 비정한 이야기이지만 이건 광고장이의 숙명입니다. 그래도 카피라이터란 직업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직업입니다.
아무리 AI가 질문만 잘하면 카피까지 써주는 세상이라지만 카피라이터만큼 소비자의 마음과 광고주의 마음을 이어주는 센스있고 창의적인 직업은 없다고 자신합니다. 그러니 꼭 한번 도전해 보십시오! 여담이 길었습니다. 다시 카피 책 리뷰로 돌아오겠습니다. 숙취 해소 음료 컨디션에 도전장을 내민 정관장 369, 당시 제품 슬로건 들어보셨나요?
'컨디션이 안 좋을 때!' 물론 슬로건 속 컨디션은 브랜드가 아니라 몸 상태라 우기겠지만, 연필 대신 칼을 들고 적 심장을
깊숙이 찌른 어느 카피라이터의 무공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Copy> 기술의 상징(금성), 첨단기술의 상징(삼성), 최첨단
기술의 상징(금성), 7~80년대 금성전자(지금의 LG전자)와 삼성전자 기업슬로건 변천사입니다. 남의 슬로건 앞에 '첨단'이라는 두 글자 더 붙이고, 또 거기에 '최'라는 한 글자 더 붙이고 웃기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지요. 두 회사가 소비자와의
소통과 공감은 뒤로한 채 내놓고 자존심 싸움을 한 것입니다. 혀를 차는 사람이 있어도 할 수 없습니다. 카피라이터는
라이벌과의 몸싸움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죠.
Copy> .부족할 때 마셨는데 왜 여전히 목마른 걸까? 신문에서 본 포카리스웨트 광고 헤드라인입니다.
그렇습니다. '2% 부족할 때', 이 광고는 포카리스웨트만이 진정한 갈증 해소 음료라는 얘기를 '2% 부족할 때'는 갈증 해소가 제대로 안 된다고 말함으로써 전달하는 광고입니다. 남의 브랜드를 직접 입에 올리는 건 비방광고가 될 수 있어 줄임표라는 꾀를 쓴 것입니다. 뭐 그렇게 똑똑해 보이진 않지만 나름 고민한 흔적이 보입니다. 저자께서 쓴 카피도 몇 개 살펴보겠습니다. 빙그레 '함께' 아이스크림, AE에 받은 브리프엔 이 제품 USP가 '100퍼센트 원유'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경쟁 제품 물론 있었습니다. 해태 조안나, 이 제품은 고맙게도 100퍼센트 원유가 아니라는 것 그래서 저자가 쓴 카피는, Copy> 원유가 아닌 데로 좋았나? 입니다. 말장난입니다. '조안나'라는 브랜드와 '좋았나'라는 질문이 같은 발음이라는 것에 착안한 헤드라인입니다. 이 둘을 연결해 조안나가 100퍼센트 원유가 아니라는 사실을 소비자에게 일러바치는 카피입니다. 내가 100퍼센트라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남이 100퍼센트가 아니라는 사실이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알리는 일이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야 소비자가 우와 열을 가려 머릿속에 정보를 보관하기 쉬우니까요. 내 이야기만으로 비교 우위를 알리기 어려울 땐 상대를 끌어들이십시오. 적의 입으로 나를 이야기하십시오. 라이벌을 공격하는 광고, 라이벌을 공격함으로써 내가 돋보이는 광고를 광고주가 싫어할 리 없습니다. 후배들도 지망생님들도 이렇있습니다..
Copy> 한 개는 한계가 있습니다. 보디 하나에 에어컨 두 개 달린 LG휘센 듀얼 에어컨의 또 다른 카피입니다. 에어컨 하나 달린 삼성을 저격하는 카피입니다. 두 제품을 소비자 앞에 나란히 세워놓고 '누가 하나 달렸고, 누가 둘 달렸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세요'라고 말하는 카피입니다. 물론 이런 광고는 공인된 데이터를 밝히는 비교광고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처럼 경쟁자를 머릿속에 넣고 카피를 쓰면, 나 혼자 잘났다고 떠드는 카피보다 더 적극적인 카피가 태어납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쓸 수 있습니다. Copy> BC 건설 있습니까? BC 제과 있습니까? BC 생명 있습니까? BC 전자 있습니까?
BC카드 카피입니다. BC는 카드에만 매달리는 거의 유일한 기업입니다. 삼성이나 현대는 카드 이외에도 여러 사업을 하지만 BC는 카드 사업 하나만 합니다. 기업의 힘이 분산되지 않는 유일한 카드임을 알리기 위해 건설, 제과, 생명, 전자를 모두 건드렸습니다.
방만하게 이 사업 저 사업을 하는 상대의 아픈 곳을 건드린 것입니다. 물론 상대는 아파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소비자는 상대의 신음을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떠신가요? 오늘도, 카피 좀 쓰는 비결, 쏙쏙 귀에 들어오시죠. 카피좀쓰는 비결과 함께하면 여러분들도 이렇게 쓸 수 있습니다. 혼자 하려면 오래 걸립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겁을 주십시오' 편을 리뷰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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